1 한국의 문을 두드린 이방인들
2018년 한국사회는 그 전까지 한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유형의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전쟁을 피해서 세계 각지로 흩어졌던 예멘 출신의 난민들이 제주도로 다수 들어온 것이죠. 한국에선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줘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게 됩니다. 많은 이들은 외국인, 그것도 한국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이슬람 문화권의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고자 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꼈고, 이는 전국적인 반(反)난민 정서로 확대되었습니다. UN의 난민홍보대사 정우성이 자신의 SNS에 난민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시글을 올렸다가 많은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었죠.
그 때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한국의 문을 두드렸던 예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1년 현재, 난민을 대하는 한국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2 그 난민신청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2019년 초 기준, 한국에 난민신청을 했던 예멘인 481명 중 최종적으로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의 숫자는 단 2명이었습니다. 신청자들 중 56명은 단순 불인정 되었고, 14명은 신청 포기 등의 이유로 직권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난민신청자 412명에게는 난민의 지위 대신 인도적 체류만이 허가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제공된 체류 허가 기간은 1년이었고 연장 신청을 통해 더 오래 머무르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여기서 인도적 체류는 한국에 머무르는 것을 허용해준다는 점에서는 난민인정과 유사하게 보일 수 있지만 몇 가지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난민 인정은 해당 사람을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인도적 체류는 잠시 머무르는 것만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난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한국에 머무를 수 있는 반면 체류 허가자들은 매년 체류 자격을 심사받아야 하죠.
이렇듯 사회 구성원이 아닌 이방인의 신분이다 보니 이들에게는 그 어떤 사회 안전망도 제공되지 않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 취업하여 일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그 외에는 생계비나 병원비를 포함한 사회보장 혜택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본국의 가족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것도 불가능하죠. 이들이 한국에서 취업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하며 관행적으로 이들에게는 오로지 단순노무 활동에 해당하는 직종의 취업만이 허용된다고 합니다. 난민법상 난민인정자에 대해서는 직업훈련이나 학력인정과 같은 규정들이 존재하지만 인도적 체류허가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존재하지 않거든요.
3 난민법의 존재 의의와 부족한 현실
대한민국은 1992년에 유엔의 난민협약에 가입하여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으며 2011년에는 난민법이라는 독립적인 법률을 제정하게 됩니다. 이 때 제정된 난민법은 그 제안이유를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난민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지 아니하여 국제사회에서 그 책임을 다하고 있지 못함”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이 법이 만들어진 이유는 더 많은 난민을 받아들여 국제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었죠. 당시 법무부는 난민협약에 가입한 아시아 국가들 중 난민들의 처우와 관련된 별도의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는 것은 한국이 최초라면서 이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난민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난민법은 어떤 형태로 시행되고 있을까요?
난민인권센터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총 15,452 건의 난민 신청이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을 찾은 난민신청자는 총 15,452 명이었습니다. 이들 중 심사가 종료된 사람들은 10,980 이었으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0.4%에 해당하는 42명뿐이었습니다. 0.4%라는 처참한 난민 인정률은 독일이나 캐나다 등 난민들을 잘 받아주는 것으로 알려진 나라들 뿐 아니라 OECD 국가들의 평균인 24.8%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지속적으로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태도를 보여온 트럼프 정부가 집권하고 있던 2020년 미국의 난민 인정률도 26.3%에 달한다고 하니 한국의 0.4%라는 비율이 얼마나 적은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이 이렇게 낮은 난민 인정률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실질적으로 난민들이 자신의 자격을 입증하기 어려운 절차적인 장애물입니다. 난민인정 절차는 외국인이 출입국 외국인청에 난민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부터 신청인들은 큰 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들은 대부분 본국을 급하게 탈출한 사람들이라서 자신의 처지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못하거든요. 심사 결과에 불만을 갖는 이들은 법무부 소속 난민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지만 1~2달에 한 번씩 모여 하루에 500건 이상을 심의하는 난민위원회에서 신청인 개개인의 사정이 면밀히 검토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소송이 가능하지만 가진 것 없는 난민들에게는 변호사를 구하는 것부터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 이러한 이유로 한국에서 난민 본인소송으로 승소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고 하네요.
즉, 당신이 부당한 박해나 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돌아온 ‘진짜’ 난민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우며 따라서 당신이 난민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죠.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바늘구멍처럼 좁게 형성된 바탕에는 ‘진짜 난민’ 수백명을 방치하더라도 단 한 명의 ‘가짜 난민’도 들여보낼 수 없다는 법무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깔려 있습니다. 결국, 지금의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는 명예와 그에 따른 국제적인 지위는 원하면서 실질적으로 그에 따르는 책임은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죠.
4 난민면접조서 조작사건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법무부의 부당한 대우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사건은 난민면접조서 조작사건이었습니다. 2015년, 법무부에서는 난민심사전담 T/F를 구성하며 ‘신속심사’를 도입해 신청인들 중 상당수를 신속심사 대상으로 분류하여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랍권 난민신청자들 다수의 난민면접조서의 내용이 심각하게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리고 왜곡된 조서는 ‘내가 기재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라거나 ‘본국에 돌아가도 문제나 위험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등 명백히 신청자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었죠.
법무부에서는 조작사건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재신청의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피해자들을 구제하기로 결정한 뒤 2020년 2월부터 탈락자들의 재신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재신청 대상에 포함된 사람의 수가 2천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기사 내용을 보면 법무부의 면접조서 조작사건이 얼마나 빈번하게 행해졌었는지를 알 수 있겠네요. 난민법을 시행하는 목적이 정말 그 명목대로 난민을 받아들이고 국제사회에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5 난민들은 정말 한국사회에 해로울까?
많은 이들은 난민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 사회에 다양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난민들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들은 과장된 측면이 많습니다.
우선,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들에게 너무 많은 세금을 쓰게 된다는 걱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2020년 기준으로 난민 정책 관련하여 책정된 예산은 24억 6,700만원으로, 정부 총 예산의 0.004%에 불과한 금액입니다. 이 금액마저도 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비용이 아니라 반 이상이 여러가지 행정비용으로 지출된다고 합니다.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정착금이 지원되는 것도 아니며 한국인들과 비슷한 수준의 사회안전망이 제공될 뿐입니다.
난민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각종 범죄와 사회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난민 범죄에 대한 공식적이고 포괄적인 통계자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주장에는 근거가 많지 않습니다. 2019년 경찰청이 발표한 범죄율 자료를 보면 오히려 내국인의 범죄율 (3.04%)이 외국인의 범죄율 (1.28%)보다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난민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건 한 두건이 사회적으로 조명을 받으며 마치 그것이 난민들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왜곡되지만 실제로 그들의 범죄율이 높다는 근거를 찾기는 어려운 것이죠.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러서 자격에 문제가 생기면 추방당할지도 모르는 난민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오히려 내국인들보다 더 조심할 거라는 예측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난민들의 출신 국가와 그 문화권의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를 이유로 이들의 입국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며, 어떤 문화의 특징과 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의 인권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특정한 문화권의 문제가 그 문화권에 속한 개인에 대한 비난과 탄압으로 이어져서는 안됩니다. 만약에 한국에서 전쟁이 나서 한국인들이 유럽에 망명을 신청했을 때, 한국의 가부장적인 문화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등을 이유로 해당 국가에서 한국인의 입국을 거부한다면, 그것이 과연 정의로운 결정일까요?
6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변화는 무엇인가
2019년에 있었던 제 1회 글로벌 난민포럼에서 우리 정부는 “계속해서 인력과 인프라의 확충을 통해 한국의 난민보호의 역량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2021년 현재 한국의 실상은 정부가 선언했던 내용과는 상당히 괴리가 있어 보입니다. 늘어나는 난민신청 건수와는 달리 난민으로 인정받는 사람의 수는 증가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난민 인정률은 세계에 내놓기 부끄러운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의 난민법이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난민들을 걸러내기 위한 법으로 작용해온 탓이었죠.
다양한 이슈들에 묻혀 크게 화제되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인 2020년 12월에 법무부에서는 난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이 개정안의 중심 내용은 ‘중대한 사정변경 없는 재신청’이나 ‘명백히 이유 없는 신청’ 등을 제한해 제도의 남용을 막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난민심사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탈락했던 사람은 중요한 변경사항이 존재하지 않는 한 두 번 다시 제대로 된 난민심사를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죠. 더 많은 난민들을 포용하는 것보다 원치 않는 난민의 유입을 막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개정안인 것입니다.
난민협약에 이름만 올려놓은 국가가 아니라 진정으로 국제사회와 난민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정책의 방향성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난민심사의 초점을 가짜난민들을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난민들을 수용하는 것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어떤 이유를 제시하더라도 0.4%에 불과한 한국의 난민 수용률은 기형적입니다. 고작 0.0004%에 불과한 난민 관련 예산을 조금만 늘리고 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법률지원 시스템을 비롯해 투명하고 공정한 심사가 진행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한다면 가짜 난민에 대한 우려 없이 더 포용적인 우리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7 맺으며
국가 안에 사회안전망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두에게 지금 도움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누구든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도움이 필요한 타국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도움의 손길을 준다면 우리도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당당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바이든 정부의 신임 국토안전부 장관 마요르카스는 어린 시절 쿠바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난민 출신입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 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있죠. 우리들이 난민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잠재적인 일원으로 변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주의 이슈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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