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해설(사회)

사실을 말해도 고소당할 수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진실유포죄라고 들어보셨나요? 이는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유포한 내용이 사실이라도 상대의 명예가 훼손될 경우에는 징역 또는 벌금형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그러한 행동이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했다면 처벌되지 않죠.

이러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서는 사생활침해를 막고 기본권으로서 개인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진실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권에 대한 침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며 오랜 기간 논란이 되어왔는데요.

헌법재판소는 지난 2 25일에는 찬성측 5명과 반대측 4명의 의견으로 합헌 판결을 내린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입장차이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논란이 지속된 걸까요?

 

1.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기나긴 논쟁의 시작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후 지속적인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인 배드파더스 사건의 경우, 아이들보다 부모 명예를 중시한다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배드파더스는 2018 7월부터 양육비를 안주는 부모들의 신상 정보를 누리집에 공개하여 780건이 넘는 양육비 미지급 사건을 해결한 바 있습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양육비 지급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돈을 안 내놓으면 강제수단이 없어 집이나 직장에 가서 시위를 하곤 했는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인해 이러한 행동들이 모두 법에 걸리게 된 것이 문제가 되었죠. 실제 배드파더스 대표는 3 1일 기준 22번의 고소를 당했다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2018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에 확산될 당시 가해자가 피해자를 맞고소해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실제 성범죄 피해자로 인정받은 피해자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인정되어 벌금을 내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였는데요. 이에 따라 성희롱을 포함한 일체의 성폭력이 용인되어서는 안된다는 미투운동의 취지를 흐리게 하고 위축시키게 한다는 점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인해 실제 미투운동 뿐 아니라 부당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분야, 예를 들어, 유독물질이 나온 식품, 화학제품, 비위생적 식당, 의료사고가 난 병원 등에 대한 보도는익명으로 보도하는 것이 원칙이 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2. 개정 및 폐지 촉구의 움직임

 피해사례들이 늘어남에 따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개정 및 폐지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미투운동과 관련하여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처벌 대상에서성폭력 피해사실 적시를 제외하는 법안을, 같은 당 표창원 전 의원은 성립요건에비방 목적을 추가하는 법안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더불어 이혜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도 처벌하지 않는 사유에당사자의 법익 침해와 관련된 사안을 추가하는 법안을 냈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모두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습니다.

 헌법소원 또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A씨는 2017 8월 동물 병원에서 치료받은 반려견이 실명위기에 처하자 수의사의 진료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잘못된 의료행위에 대해 SNS에 게시하려 하였으나 이러한 행위가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관련 글은 올리지 않는 대신 A씨는 해당 조항에 대해 같은 해 10,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더불어 진실탐사그룹셜록과 사단법인오픈넷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및 개정 취지에 뜻을 같이 하는 국민의 의견을 모아 지난 2020 10 8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접수함에 이르렀습니다.

 나아가 201845일에는 법학교수, 변호사 등 한국의 법률가 330인 역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촉구하는 법률가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하였죠.

 

3. 기본권으로서의 명예권 : 사생활의 보호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5(합헌): 4(위헌)지난 2 25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합헌으로 판결합니다.

 그 근거로는 첫째, 현대사회에서 개인의명예 의사소통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최소한의 자격이라는 점을 들었습니다. 온라인 환경에서는 정보가 유포되는 속도가 빠르고 그 영향력이 이전보다 커졌기에 한번 망가진 명예는 회복되기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 성적지향, 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둘째,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민·형사상 절차없이 공공에 사실을 알려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가해자의 책임에 부합하지 않는 사적 제재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약점과 허물을 공공연하게 알리는 것은 민주적 의사 형성에 기여하는 '표현의 자유'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주장에 대해서도공익 목적의 경우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형법 조항에 따라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셋째, 한국에는 명예훼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기 때문에 민사소송으로는 명예훼손 예방 효과 또한 적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나아가 민사상 구제수단의 경우 소송비용의 부담이 있고, 소송기간이 장기화될 수 있어 승소하더라도 그 사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형사처벌이라는 수단을 활용하지 않아도 개인의 명예보호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시기적으로 위헌판단은 부적절하다고 하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합헌으로 판결이 나게 됩니다.

  

4.  해외사례와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와의 비교

 그렇다면 다른 국가는 어떠할까요? 해외에서 사실적시를 이유로 형사 처벌을 하는 국가는 드문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 민사 손해배상으로 해결하기 때문이죠. 명예훼손에 대해 처벌을 하는 국가일 경우에도 독일은 타인을 비방하거나 충분한 사실을 전파한 자는 진술이 진실임을 증명할 수 없을 때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또한 진실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범죄자들의 얼굴과 나이, 거주지 등 신상정보를 곧바로 공개할 정도로 공익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UN 및 다수의 국제기구, 단체로부터 우리나라를 언론 및 표현의 자유 후진국으로 평가하게하는 주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아가 실제 2015년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와 2011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대한민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정식으로 권고한 바 있습니다.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에 따르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도 악의(내지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한 것이라면 이를 형벌로 처벌해서는 아니됩니다. 그리고 정부에 대한 비판 또는 의견 표명을 한 개인을 명예훼손범죄로 처벌해서는 안되며 사실적시 여부를 떠나 모든 형태의 명예훼손에 대한 범죄화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범죄로서 명예훼손을 허용하는 경우, 처벌은 극히 중대한 사건으로 제한해야하며 그러한 경우라도 구금은 적절한 처벌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5. 으며

 연예인들의 악플로 인한 자살 등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 반드시 형법에서 규정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같은 방식이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명예훼손은 정정, 반론보도, 손해배상청구와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통해 구제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 헌법재판소가 언급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소송을 위한 비용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진실을 밝히기 위한 문이 막혀서는 안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악의적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사람들로부터 개인을 지키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핵심 요소는 표현의 자유입니다. 오랜 기간 투쟁을 통해 얻은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지켜내는 것 또한 민주주의 국민의 책임이 아닐까요?

 그동안 이를 위해 힘써온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부당한 사건들에 대하여 그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이번주의 이슈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