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5일, 인천 미추홀구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8 살의 아이가 사망한지 일주일도 더 지난 상태의 시신으로 발견된 것입니다. 아이를 살해한 범인은 바로 아이의 친모였던 44세의 백모씨였으며, 그녀는 일주일간 아이의 시신을 방치한 끝에 119에 신고하여 아이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했다고 합니다. 백씨는 본인 또한 세상을 떠나려고 시도했지만 살아남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범행 동기는 생활고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백모씨와 사실혼 관계였던 아이의 친아버지는 아이의 사망사실을 알게 된 후 한 아파트단지에서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사망진단서 위에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이름이 없다는 뜻의 ‘무명녀(無名女)’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왜 이름도 없는 상태로 죽어가야 했던 걸까요? 그것은 아이의 친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 “등록된 인간” 이 된다는 것
인간이 일반적으로 소속감을 느끼는 가장 큰 단위의 집단은 아마도 ‘국가’ 일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한 국가에 소속되어 국방과 납세 등의 의무를 수행하며 그에 따른 사회 시스템의 도움과 복지 혜택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국민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그를 위해선 본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국가에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탄생을 국가에 알리고 그 사람을 시스템에 편입시키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출생신고입니다. 즉, 출생신고는 국민들에게 제공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의 시작인 것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현재 한국에서 출생신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아이들은 제대로 된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된다는 뜻이죠. 출생신고가 되지 못한 아이들은 건강보험과 예방접종에서 누락될 뿐 아니라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도 받지 못해 의무교육의 혜택에서도 제외됩니다. 이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영아매매나 불법적인 입양 등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하지요. 오늘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름없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2. 부모의 의지에 기대야 하는 출생신고 제도
1989년에 UN에서 채택하고 한국이 1991년에 비준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의 제7조 1항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한다’고 규정하여 국가에서 아이들의 출생신고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헌법 6조에 따라 이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고 하니, 이 협약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태어나자 마자 출생신고를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출생신고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르면 한국의 출생신고는 출생 후 1개월 이내에 아이의 부 또는 모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동거하는 친족이, 그리고 그 다음 우선순위로 분만에 관여한 의사나 조산사 등이 신고 의무자가 됩니다. 얼핏 보면 아이와 관계된 다양한 사람들이 출생신고를 해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무적으로 아이의 부모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이 되는 등 객관적으로 부모의 출생신고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만 “부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라고 인정되거든요.
즉, 부모가 의도적으로 아이의 출생신고를 기피한다면 그 아이의 출생신고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일부 부모들이 이렇게 출생신고를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이 낳은 아이라면 당연히 사회의 일원으로 등록시켜주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흔히 ‘정상가족’이라 부르는 일반적인 가족이라면 아마도 그것이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하지만 정상가족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하는 사실혼 가족의 경우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3. 왜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신고하지 않았을까?
K 씨는 남편이 교도소에 수감중인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 사실혼 관계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게 된 것이죠. 즉, 법적인 남편과 실질적인 (사실혼) 남편이 다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아이를 출생신고하면 아이가 남편의 자녀로 등록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K 씨는 남편이 자신의 아이를 알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이에 대한 출생신고를 거부하게 된 것입니다.
K씨와 그 자녀의 사례도 안타깝지만 더 나아가 방치되거나 학대받는 아이들 중에는 부모들의 철저한 무관심과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출생신고에서 누락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모성애나 부성애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은 아니니까요. 2016년, 법 개정을 통해 “신고의무자가 1개월 내에 신고를 하지 아니하여 자녀의 복리가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지만, 해당 조항에 대한 좁은 해석으로 인해 개입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들은 아이가 신고가 된 아이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으며, 아이를 집에서만 키운다면 아이의 존재 자체도 알기 어려운 경우 또한 존재하지요. 실제로 2017년 초 대전에서는 아동학대 신고를 통해 발견된 만 18세의 청소년이 그 나이가 되도록 출생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아 학교도 다니지 않았고, 아무런 의료혜택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일도 있었습니다.
앞서서 갓 태어난 아이에 대한 출생신고는 법적으로 규정된 의무라고 했었죠? 그러면 이 의무를 어긴 부모에게는 어떤 처벌이 가해질까요? 5만원의 과태료가 전부입니다.
4 부모가 원함에도 불구하고 등록되지 못하는 아이들
부모의 의지 혹은 무관심으로 인해 출생신고 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아이들의 아버지가 간절히 원함에도 불구하고 출생신고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 또한 존재합니다. 강원도의 미혼부 A씨는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친 B씨를 만나 사실혼 관계의 가정을 꾸렸습니다. 사랑스러운 아들도 낳았죠. 하지만 그들이 출생신고를 하려고 주민센터를 찾았을 때 들은 답은 둘이 혼인신고도 안 된 사이이고 친모가 아직 전남편과 법적으로 부부사이이기 때문에 출생신고가 어렵다는 내용이었습니다. B 씨의 전남편은 이혼을 해주는 대가로 위자료 1억원을 요구했고 B씨는 죄책감에 도망쳐버립니다. 법원에 ‘미혼부 출생신고’를 신청했지만 병원의 출생증명서에 엄마의 이름과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 등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기각당합니다. 결국 A씨는 친아들의 출생신고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해주지 못한 상태로 아이를 유치원도, 어린이집도 보내지 못하면서 키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2018년에는 자신의 몸으로 낳은 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직접 성씨를 만들게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 17세였던 미혼모 C씨는 태어났을 때부터 입양기간에 맡겨진 뒤 한 부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족관계가 점점 벌어지고 결국 C씨가 아직 중학생이던 시절에 그녀의 양부모는 입양을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양부모는 그녀를 친자로 등록한 상태였고, 이후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송을 통해 부모와의 관계가 끝나자 C씨는 가족관계등록부에 존재하지 않는 ‘무적’ 신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사실혼 관계의 남성과 아이를 낳게 된 그녀는 자신이 가족관계부에 등록되지 않은 미성년 엄마이기 때문에 아들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결국 그녀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시조인 새로운 성을 만들어 가족관계 등록을 마친 뒤에야 아들의 출생신고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5. 현행 제도와 필요한 발전들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이런 아이들의 존재는 신고하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집계도 어렵습니다. 외국인 부모가 낳은 미등록 이주 아동의 경우 외국인 관련 통계를 이용해 8000~20000명으로 추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한국인들이 낳은 아이들은 그 수를 어림하는 것 자체도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작년 6월에 ‘사랑이와 해인이 2법’이 발의되었습니다. 해당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혼외관계에서 낳은 아이의 출생신고 대상이 기존의 ‘어머니’에서 ‘어머니 또는 아버지’로 확장되며, 친모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등을 알고 있더라도 친모가 아닌 친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아직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까지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개정보다 더 중요한 출생신고와 관련된 문제의 근본은 아이를 부모에게 귀속된 존재로 판단하고 부모에게만 출생신고 권한을 부여하는 현행 출생신고 체계입니다. 따라서 그림자처럼 살다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 존재가 알려지는 아이들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개정안을 넘어서 출생신고 체계 자체의 개편이 필요합니다. 많은 이들은 새로운 ‘보편적 출생 신고 제도’의 도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해당 제도가 도입된다면 아이들이 태어난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관련 기관에 아이의 출생 사실을 알리게 됩니다. 이것이 가능해진다면 부모의 의지나 상황, 여건이 여의치 않더라도 태어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서 말하는 출생신고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게 됩니다.
6. 마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 어딘가에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유령처럼 살다가 스러지는 아이들이 없는 사회, 모든 아이들이 태어남과 동시에 사회의 공식적인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꿈꾸며 이번주의 이슈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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