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있었던 의료진들의 단체 파업, 다들 한 번쯤 들어는 보셨을 겁니다. 그 발단이 된 이슈는 의대생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였는데요, 이 사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에 대한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일각에서는 의사들의 행동이 무책임하다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이슈에 대해 정부의 방침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는지, 이 방안에 대해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에서는 각각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팩트정리>
우선 정부 방침의 내용부터 자세히 알아볼까요? 이번 정부 방안의 가장 중심적인 내용은 향후 10년간 의과대학의 정원을 매년 400명씩 증가시켜서 10년간 4,000명을 추가로 양성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영구적인 정원 확대는 아니며, 2022~31년 동안만 3,458명을 선발하고 2032년부터는 다시 현행과 같은 3058명의 정원을 선발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증원되는 400명은 세부적으로 지역 내 의료분야에 종사할 지역 의사 300명과 역학조사관, 중증 외상 등 특수 전문분야 50명, 그리고 바이오메디컬 분야 발전을 위한 의과학 분야 50명으로 구분하여 증원할 예정입니다.
또 다른 특기할만한 사항은 ‘지역의사 선발전형’을 도입하는 방안입니다. 이 방안 또한 지역간 의료인력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며, 해당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은 장학금을 지급받으며, 지역의 의료기관에서 전공의 수련과정을 포함하여 총 10년을 근무해야 합니다.
정부의 이같은 발표에 의사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8월 7일에는 대한전공의협의회 주도로 전공의들이, 8월 14일에는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개원의들이 단체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의·정 간담회를 가졌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에 따라 의료계는 이미 예고된 21일 대한전공의협의회 파업과 26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지는 제2차 전국의사총파업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정부에서는 의료계 휴업을 멈추면 의대정원 확대와 관련된 정책 추진을 일단 유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정부에서 이런 방안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의사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양 측의 입장을 알아볼까요?
<의대 정원 확대 필요하다>
한국의 의과대학 정원은 2006년 이후로 한 번도 늘어나지 않은 채 3058명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 결과, 지금 한국은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인구 대비 의사의 수가 현저하게 낮습니다. 국가별로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통계를 살펴보면 OECD 국가들의 평균치는 3.4명인데 비해 한국의 1000명당 의사 수는 1.8명 입니다. 한의사들을 포함하여 계산하여도 2.3명으로 OECD 국가들의 평균에 미치지 못합니다. 특히 수도권 외 지역의 1000명당 의사 수는 경북 1.4명, 충남 1.5명 등 의사 수에 있어서 지역 불균형 또한 무척 심각한 수준입니다. 한국의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너무 명백한 현실이며 의대 정원을 늘리고 그들이 지방으로 유입되도록 유도하는 것은 마땅한 수순입니다.
지금의 의료계는 지역에 따른 불균형 뿐 아니라 전문 분야에 따른 불균형 또한 심각한 상태입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의 발표 내용에 따르면 한국의 감염내과 전문의는 277명 뿐이고 소아외과 전문의는 50명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인원이 부족한 분야에서 충분한 숫자의 전문가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특수 전문분야 인원을 선발하는 이번 정원확대 방안은 바람직합니다.
의대 정원 확대는 불법의료행위의 근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전공의 수급이 부족한 전문의과에서는 진료보조인력이라 불리우는 PA(Physical Assistant, 진료보조) 간호사들이 처방이나 당직 등 의사들이 맡아야 할 업무들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서 의사 면허가 없는 인력이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PA들이 의사의 업무를 상당부분 대신하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한국의 의료인 부족 문제를 가장 여실히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법은 영리법인이 병원을 설립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의료시스템이 본질적으로 국민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공공재적 성질을 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병원이라는 조직의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해보아도 정원 확충은 올바른 방향으로 내딛는 한 걸음이 확실합니다.
<의대 정원 확대는 의료 시스템을 악화시킬 뿐이다>
한국 의료인력의 지역 불균형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무턱대고 의료인의 수를 늘린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정부에서 일을 추진하는 방식이 너무 일방적입니다. 특정 전문분야와 관련된 정책을 추진할 때에는 해당 분야를 세심하게 살피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충분한 상의를 거쳐야 합니다. 현재의 보건복지부는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주축이지 의료전문가들이 주축이 아닙니다. 전문가 집단에서 강한 반대 주장이 나올 때에는 단순히 ‘밥그릇 지키기’로 물아가기 전에 왜 반대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봐야 합니다.
우선, 의료인의 수가 많다고 의료의 질이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보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의사 수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과연 해외 국가들의 의료의 질이 우리나라의 의료의 질보다 높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국의 기대수명이나 영아사망률 등은 OECD 국가에서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어요. 이번 코로나 사태만 보더라도 의사 수가 많은 국가들이라고 어려움을 덜 겪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이 상대적으로 훌륭한 대응을 보여줬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인력의 크기가 아니라 효율적인 배분과 활용입니다. 의료계의 지역 불균형도 이런 맥락에서 나타난 문제입니다. 지역의사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지역에 남아있을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의무 복무기간이 지난 의사들이 모두 서울로 올라올텐데 이는 결국 더 심각한 쏠림현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의대 정원 확대는 특정 분야의 쏠림현상도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도 처음에는 의대내의 특정 학과에 대한 쏠림현상을 막기 위해 도입된 측면이 있었지만 의학전문대학원 출신 의사들 역시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경우가 적었으며, 인기과에 지원이 몰리는 현상은 결국 전혀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특정 분야의 높은 노동 강도, 저임금, 낮은 직업 안정성 등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부의 이번 의대 정원 확대 정책도 비슷한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교육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무책임한 의대 정원 확대는 의료 질 하락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적절한 의료교육을 위해선 다양한 실험/실습 장비들과 시설이 필요한데 급격하게 늘어난 정원을 수용하기에는 현재의 시설이 부족합니다. 특히 지방에 배정된 학생들도 다른 학생들과 동일한 수련을 받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수련병원들은 도시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결국 지방에서 근무하게 될 예비 의사들은 학생 시절부터 열악한 환경을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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