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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 국뽕이란 무엇인가

올여름, 극장가는 빅4라 불리는 4개의 영화로 시끄러웠다.

<외계+인>, <비상선언>, <헌트>, 그리고 <한산 : 용의 출현>이다. 네 작품 모두 할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그중 가장 많은 관객수를 동원했으며 현재(9월 2일 기준) 유일하게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 <한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순신 장군이 8년 만에 돌아왔다. 만약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 손 잡고 극장에서 명량을 봤다면, 현재 그 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 되어 혼자 키오스크로 티켓 끊고 영화관에 앉아 팝콘 먹으며 ‘이순신 개쩌러’를 외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거다. 

 

반면의 이순신 장군은 8년 전 보다 훨씬 젊어졌다. 배우도 최민식에서 박해일로 바뀌었다. 실제로 명량 해전은 1597년에 벌어졌고, 한산도 대첩은 1592년에 일어났으니 시간 순서상 더 과거로 돌아간 것이 맞다. 

조금 급격한 변화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내가 이순신 장군님의 5년을 속속들이 아는 건 아니니까. 대충 마음고생이 심하셨나 보구나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명량을 그다지 재밌게 본 편은 아니었다. 대사나 상황은 툭툭 끊기고, 연출은 투박하며, 개연성이나 스토리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점에서 이번 한산도 명량과 비슷했다.

감독이 실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의 전작품 <최종병기 활>을 정말 재밌게 봤기 때문이다. 

아마 장면 하나하나를 고전 명화작품처럼 거대한 이미지화시켜, 관객의 눈에 각인되게 만드는 연출에 집중했기 때문에 매끄러움이 떨어진 게 아닐까 싶다. 영화를 멈추었을 때 보이는 장면은 웅장하지만, 재생을 시키면 인물들의 움직임도 적고 대사는 더 현저히 적어 영상적으로는 볼거리가 많은 편이 아니니 말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영화, 대사가 안 들린다. 다들 사극톤으로 말하느라 잔뜩 목소리를 깔고 있는데 상황과 배경 소음에 섞여 발음까지 불명확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건 한국 영화가 가진 보편적인 단점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시각 장애인과 효과적인 대사 전달력을 위해 앞으로 모든 한국 영화에도 자막이 달렸으면 좋겠다.

 

이런 단점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훌륭하다. 특히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사람을 고양되게 만든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맞다. 시쳇말로 ‘국뽕’ 차오르게 한다. 이 영화는 ‘국뽕’ 그 자체다.

 

나는 국뽕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디어 콘텐츠상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한다. 

국뽕 스토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외세 전쟁이다. 한산, 암살, 밀정,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영화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두 번째는 민주주의 국뽕이다. 인류는 거대한 투쟁과 수많은 피를 흘려 민주주의를 쟁취해낸 역사가 있다. 화려한 휴가, 변호인 같은 영화를 통해 내가 인터넷에 이런 아무 말 비평을 써 올리고 있음에도 탄압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세 번째는 인간승리 국뽕이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내어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 낸 현실의 인물을 조명하는 것이다. 국제시장이나 국가대표와 같은 영화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개인이자 동시에 국가를 대표한다. 

 

이런 ‘국뽕’ 영화는 사실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더 자주 보인다. 미국의 국뽕은 아주 세련됐다. 관객은 자신이 보는 게 국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란 걸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바로 ‘히어로’ 시리즈다.

 

미국의 ‘영웅물’들은 국민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국가적인 자부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벤저스의 리더가 캡틴 ‘아메리카’인 건 다 이유가 있다. 납치당했던 토니 스타크가 탈출하자마자 제일 먼저 먹었던 것이 가장 미국스러운 음식인 ‘치즈버거’를 먹은 것도 비슷한 이유다.

 

최근 ‘국뻥’을 국뽕처럼 이용하여 거짓 뉴스로 돈을 버는 유튜버들이 많아졌다. 혹은 국가가 나서서 ‘국뻥’을 일삼아 거짓된 민족 자부심을 세뇌시켜 버리거나.

그 때문에 ‘국뽕’이라는 키워드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었다. 하지만 국뽕은 우리 곁에 계속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에 어느 정도 존재해야만 한다.

 

국뽕 스토리는 역사에 근거한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여러 삶의 가치를 배운다. 역사를 나침반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지표는 개인의 행동과 판단의 근거가 되어 준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를 되돌아봐야만 한다.

 

역사는 침략과 타인을 억압하기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더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이용되어야만 한다.   

 

사람의 기억력은 한정되어 있어서 아무리 강렬하더라도 어느 시점이 되면 잊고 살아가게 된다. 이순신 장군처럼 전 국민이 아는 인물의 행적도 한산이 아니었다면 다시 기억에서 끄집어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현대인에게 익숙한 건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동상’이니까.

 

 

국뽕물아 영원해라. 괜히 오버해서 국뻥 치거나 요상한 미화는 시키지 말고. 역사가 가지는 의미와 목적을 기억하며 재미있게, 아주 재미있게 우리 곁에서 계속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