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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꼭 술을 마셔야 솔직해질 수 있는 건가요?

예고만 해도 조회수 82만 회. 올린 영상은 10개인데 총조회수가 4500만 회가 다 되어가는 채널. 출연만 했다 하면 SNS에 상에서 화재가 되는 웹 예능. 바로 래퍼 이영지의 술방 예능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이다.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은 원래 <차린 건 없지만>이란 프로그램으로 업로드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차린 건 없지만>은 계약 당시 이영지의 15회 차 출연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후 CP가 채널 분리를 원하게 되며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으로 다시 영상이 업로드되기 시작됐다.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이하 차쥐뿔)>은 이영지가 실제 거주하고 있는 집에 연예인 게스트를 초대하여 함께 술을 마시며 ‘술친구’를 사귀는 콘텐츠다. 

 

그간 나왔던 ‘신과 함께’, ‘인생 술집’과 같은 술 예능과 다른 점이라면 차쥐뿔은 진짜 취할 때까지 마신다. 술맛이 어떻고, 뭐랑 같이 먹어야 맛있고~ 이런 내용들은 거의 담기지 않는다. 보고 있자면 정말 친구와 집에서 간단하게 먹을 거 깔아 놓고 헛소리하면서 신나게 부어라~ 마셔라~하는 기분이 든다. 

 

물론 그 안에서 한 번씩 진솔한 이야기도 튀어나온다. 원래 술자리란 게 그렇지 않나.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속마음을 술 때문에 느슨해진 이성에게 기대 툭 하고 내뱉는 것.

그런 부분이 차쥐뿔에 출연한 게스트들의 진정성을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심각한 이야기나 완전히 몰랐던 이야기를 하는 건 또 아니다. 사람 사는 게 비슷하듯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도 비슷하다. 어쩌면 술에 취했다고 심각한 이야기를 꺼낼 만큼 힘듦을 느끼고 있는 연예인이 출연하지 않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신나고 건강한 술자리. 그게 차쥐뿔이 가지는 분위기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이, 차쥐뿔이 인기를 얻을수록 우려도 커져간다. 바로 출연한 연예인들이 술을 마시는 방식에 대해서다. 

 

한국은 술에 민감한 듯 관대하다.

한국에서는 흔히 술꾼의 근거로 ‘반주’를 이야기한다. 밥 먹으며 술 한잔 곁들이자는 소리를 했다가는 주정뱅이를 향한 일반인의 한심한 눈빛을 받기 일수다. 하지만 이런 곁들임 술은 해외에서 오히려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점심 식사 중 가볍게 와인 한 잔 곁들이기, 무더운 날 맥주 마시며 걷기, 카페테라스 그늘에 앉아 와인 마시며 쉬기, 동네 공원에 앉아 친구와 담소 나누며 맥주 마시기 등. 물이나 커피보다 맥주나 와인이 더 저렴하니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한국은 이렇게 자연스레 일상에 녹이는 술은 부담스러워하면서, 놀랍게도 음주 행위에 대해서는 너그럽다.

한국 미디어는 흡연 장면은 우스울 정도로 필사적으로 검열하는 반면, 음주 장면은 권장에 가까울 정도로 관대하다. 마치 ‘어른이 되면 삶의 고단함과 피로함에 짓눌릴 때, 술을 먹으며 푸는 거야.’ 라거나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다면 일단 술을 진탕 먹는 걸로 시작해보렴’이라고 조언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취했을 때 모습이 본모습이란 의견에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기본적으로 집도 아닌데 ‘길바닥이 침대요, 하늘이 이불이니라~’만큼 술을 마시는 것도 문제다. 자신의 귀갓길을 타인에게 술에 술탄 듯 맡기겠다는 거 아닌가.

취했다는 핑계로 옆사람한테 시비 걸거나 범죄를 일으킨다? 술이 이성을 녹여 본성을 드러낸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음주에 관한 처벌이 약하다. 

음주운전에 대한 사망사고 형량을 보면 한국과 일본은 1년 이상의 징역형인 반면, 미국 워싱턴은 최대 무기징역이고, 영국은 최고 14년, 프랑스는 최고 7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내용으로만 봤을 때, 한국의 최고 형량은 무기징역이니 음주운전에 관해 더 강한 처벌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20년 7월 음주운전에 대한 판례를 살펴보면, 25건 중 단 한 건만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나머지 24건에 대해서는 인명피해가 있든, 없든 전부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였다.  

 

다른 주요국은 인명피해가 없더라도 통상 2회 이상 단속에 걸리면 재범으로 분류하여 엄격한 제재를 가하지만, 한국은 3회 이상 위반부터 재범으로 분류한다. 적어도 2회는 음주 운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2008년, 전 국민을 분노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조두순’을 감형시킨 ‘주취감경’은 여전히 폐지되지 않고 우리 법 안에 살아 있다.

성범죄에 한해 주취자의 감형을 제한하는 특별법이 신설되긴 했으나, 이 조항이 또 반드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심신미약이 증명되면 심신장애자의 형 감경을 반드시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술을 권하는 사회 풍조에 비해 한국은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이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이런 사회 안에서 차쥐뿔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술 게임을 하며 술을 사발로 마시거나, 한숨 돌릴 시간도 없이 연거푸 마셔대며 취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 영상이 미성년자, 혹은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성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걱정이 된다.

 

한국의 알코올 중독 추정 환자수는 매년 늘고 있다. 치매 환자 중 알코올성 치매 증상을 가진 환자의 비율은 24%로 10%인 해외에 비해 두배나 높으며, 환자의 연령대 또한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술 장면을 보여주며 이런 걸 명확하게 알려주는 콘텐츠는 없다. 차쥐뿔도 마지막 장면에 잠깐 ‘[주의] 과도한 알콜 추앙은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라고 자막을 띄우는 게 전부다.    

 

미디어는 왜 계속 술을 방송에 끌고 들어올까? 왜 우리는 상대의 진짜 모습을 알려면 함께 술을 마셔봐야 한다는 말을 진리처럼 믿고 살고 있을까?

 

결국에는 진솔함이다. 

우리는 술을 통해 상대의 ‘진솔한 모습’을 기대한다. 평소에 우리가 가진 생각과 마음을 상대에게 솔직하게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한다면 번거롭게 ‘술자리’라는 검증과정까지 겪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제 ‘술김을 빌어 너에게 고백할게’와 같은 노래 가사는 빛바랜 옛 감성으로 남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