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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약하게 만드는 사회

이 글을 쓰기 전, 내 소비 기록을 한 번 살펴봤다. 정말 단 하루도 돈을 안 쓴 날이 없었다. 체크카드, 신용카드 1, 신용카드 2,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스마일페이, 페이코… 아주 골고루 돌아가면서 착실하게 대한민국 경제 순환에 이바지했더이다. 

요즘 같은 경제 불황 시기에 이렇게 사는 사람도 드물 거다. 경제부처 관련 공무원께서 만약 이 글을 읽으신다면 꾸준히 한국 경제 살리기에 일조하고 있는 이 애국시민의 노력을 치하하여 문상 한 장만 보내주십쇼. 기프티콘도 괜찮습니다.

 

코로나 후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새로운 콘셉트의 인증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로 ‘절약’ 인증 콘텐츠다. 

기존의 욜로, 플렉스 콘텐츠가 얼마나 큰돈을 썼는지가 중점이었다면, 절약 인증 콘텐츠는 반대로 얼마나 오랜 기간 지출을 하지 않았는지가 주요 핵심이다. 

절약 브이로그, 일주일 무지출 챌린지, 냉장고 파먹기, 앱 테크 팁 등 의외로 할 수 있는 콘텐츠도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뷰티, 패션 유튜버들의 하울이나 브이로그를 ‘별세계’처럼 느낀 내게 절약 유튜버들의 콘텐츠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현실’의 축소판처럼 보였다.

 

이들이 절약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평범하다. 대학 때문에 학자금 대출이 생겼고, 취업 준비를 하며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 없어 생활비 대출을 조금 받았고, 사회초년생이 되었는데 최저임금에 맞춘 연봉으로는 저축까지 하기 힘들고, 편하고 안정감 있는 자신의 집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내 주변만 봐도 5명 중 3명은 이런 상태인 거 같다. 말하자면 이게 요즘 세대들의 보편적인 상황인 것이다.

 

재테크 강사들은 말한다. 경제 상황이 현재보다 나아지려면 돈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기본 수입을 늘려야 한다고. 물론 그게 근본적인 해결방법인 건 맞지만 투잡, 쓰리잡이 모두에게 가능한 건 아니다.

본업의 근무시간이 너무 길거나, 체력소모가 심하거나, 근무 시간대가 일반적이지 않을 경우 새로운 직업을 찾는 것이 힘들 수 있다. 그리고 최저임금 노동자일수록 노동형태가 위와 같을 확률이 높다. 수입 증가가 간절한 사람일수록 수입을 증가시키기 힘든 환경에 처해있는 거다.

 

나도 재테크에 막 관심이 생기던 초반에는 재테크 강사의 저 말이 참으로 와닿았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나는 어떻게 해야 수입을 늘릴 수 있을까.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할애해야 했다. 그건 내 저녁 시간에서 야구가 사라지고, 좋아하는 아이돌의 라이브 방송을 실시간으로 볼 수 없어지며, 설레는 주말 공연 관람도 어려워진다는 뜻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경제 사범 대신 경제 애국 시민의 길을 택했다. 그래 나 같은 사람도 한 명쯤은 있어야지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내가 절대로 게을러서가 아니다. 

 

나와 달리 절약 유튜버들은 하나같이 부지런했다. 유튜브를 운영하는 것만으로 이미 투잡인데 거기서 외주 작업, 단기 알바, 파트타임 알바 등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모은 돈으로 빚을 갚았고,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한 저금을 했다. 

그들의 수입 중 사회 경제에 돌아가는 돈은 극히 일부분이었다. 

 

‘절약의 역설’이란 말이 있다. 절약과 저축이 오히려 경제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의미다. 저축과 절약은 경기가 불황일 때 더 심해지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SNS에 ‘무지출 인증’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부터였다.

개인에게 도움이 되는 절약과 저축은 결국 누군가의 소득감소로 이어진다. 소득이 감소되면 소비가 위축되고, 그것이 경제 활성화를 방해한다는 거다. 이게 바로 절약과 저축의 역설이다. 

 

실제로 최근 통계를 보면 코로나 이후 고소득자의 저축률은 40%까지 증가했다. 고소득자들의 수입은 오히려 코로나 후로 유지되거나 늘어났다. 반면에 정부의 방역지침으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지출은 줄어들었다.

고소득자들은 발생한 여유자금을 소비가 아닌 투자로 전환시켰다. 이들의 ‘저축’은 경제 침체가 계속되어도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상승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당연히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이런 ‘재테크’ 패턴이 고소득자뿐만 아니라 ‘절약’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절약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과하지 않은 절약은 건강한 생활습관을 만들어 준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가게 되고, 직접 재료를 사서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되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자원이 낭비되는 것을 막아준다.

 

절약 유튜버들이 가진 불안에도 공감한다. OECD 노인빈곤율 1위에 서울 기준 자가 거주 비율이 43%밖에 되지 않는 국가에 살고 있는데 어찌 마음 편히 돈을 쓸 수 있겠는가.  

 

다만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만들어질 미래의 사회 모습이 우려될 뿐이다. 

언제쯤 사람들이 마음 편히 지갑을 여는 시기가 올까? 경제 호황이 오긴 오는 걸까? 국민들이 가지는 근본적인 불안감이 해소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