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생 때 친구와 함께 처음 보는 강사를 인권위에 고발한 적이 있다.
특강을 위해 온 강사였는데, 그는 뜬금없이 동성애가 얼마나 죄악인지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맥락 없이 가난하고, 노쇄하고, 병든 노인들의 영상을 보여주며 이것이 동성애자들의 최후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정을 꾸리고 정상적인 가족을 만들어 살아야 한다면서.
강사는 누가 봐도 오직 ‘불쾌감’을 조성하기 위해 짜깁기 된 영상을 보여주며, 동성애자들이 이렇게나 기분 나쁘고 혐오해도 되는 존재라고 피력했다.
특강이 끝나자마자 학교 SNS는 난리가 났다. 어떻게 이런 강의를 할 수 있냐, 특강 계획서 안 받았냐 등등. 당연히 그 강의를 들은 학생 중에는 동성애자도 있었다.
SNS에 올라온 의견 대다수가 강사의 주장에 반대한다는 내용이었지만, 간혹 가다 강사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지 않냐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더 큰 문제는 특강을 통해 동성애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의견이었다. 부정적인 감상만을 위해 짜깁기 된 영상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권위에서 답장이 왔다. 강의 내용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로 인해 ‘실질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조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 인권위의 복사+붙여 넣기 신공으로 친구가 받은 답변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했다.
실질적인 피해라니. 강사가 “이 사람이 바로 동성애자입니다”라며 단상 위로 사람 하나 끌고 올라와 뺨이라도 때렸어야 했다는 걸까?
그리고 2022년. 성소수자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해도 용인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금지하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 퀴어 예능이 강림했다. 바로 웨이브의 ‘메리퀴어’다.
메리퀴어는 성소수자 연애 관찰 예능이다. 이 프로에는 총 세 커플이 등장한다. 남-남 커플인 보성 민준, 여-여 커플인 승은 가람, 마지막으로 여-트랜스젠더 남성 커플인 민주 지해다.
메리퀴어의 오프닝멘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특별한 퀴어들의 평범한 연애 이야기”
세 커플의 연애 장면은 흔한 사이좋은 연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사랑하고, 놀리고, 질투하고, 고민을 이야기하고 풀어나가는 장면은 오히려 이상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은 다르다. 이성애자에게 별 거 아닌 일에 대해서 성소수자는 투쟁과 좌절을 반복하여 쟁취해내야 한다.
보성 민준 커플은 혼인신고를 올리고 싶어 한다. 두 사람의 혼인신고는 서류작성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서류에 개인 신상을 적는 칸이 ‘남편’과 ‘아내’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 될 걸 알면서도 서류를 제출한다. 다행히 22년 3월부터 동성부부의 혼인신고도 서류접수가 가능해졌다. 물론 그게 곧 법적인 부부로 인정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이 제출한 혼인신고서는 가족관계 증명서와 관련 서류를 기입하는 ‘기록’ 과정과 ‘등기’ 과정에서 ‘불수리’ 처리된다.
정부는 그렇다면 어차피 처리되지 않을 동성부부의 혼인신고서를 왜 접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한 것일까?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 의식이 높아진 걸까?
기대와 달리 이 시스템은 이성애자들을 위해 재정비됐다. 전산시스템 상 오류로 이성끼리 혼인신고를 하더라도 접수 자체가 막히는 경우가 있었고, 수기 기록을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성별이 잘못 기재되어 혼인신고에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있어 그런 문제를 조정하기 위해 개정된 것이다.
승은 가람 커플은 승은이 부모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리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승은은 과거에 부모로부터 거부당했던 경험이 있었다. 부모에게 만나는 사람을 소개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있으며,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리는 그 자연스러운 과정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부정당하는 경험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비슷한 충격을 느끼게 한다. 누가 뭐래도 자신을 가장 사랑해줄 거라 믿은 존재로부터 거부당한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한순간에 앗아가 버릴 정도로 강한 후유증을 남겨 버린다.
민주 지해 커플은 지해의 성별 정정 과정에서 사소하고 다양한 벽들을 마주한다. 두 사람은 함께 수영장에 갈 수 없다. 지해의 성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목욕탕도 갈 수 없다. 외부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어렵다. 병원에 갔을 때 지해는 자신의 외형과 주민등록상의 성별이 보편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달리 보이는 것에 대해 매번 설명해야 한다.
보면 볼수록 성소주자들이 수용받을 수 있는 사회는 멀게만 느껴진다.
승은 가람 커플이 부모에게 자신의 애인을 소개할 수 있게 되려면 동성을 만나는 게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 보성 민준 커플이 법적으로 부부가 되려면 국가가 동성부부를 부부로 인정해줘야 한다. 민주 지해 커플이 화장실 이용에 불편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공용 성별 화장실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말 그대로 시궁창이다. ‘게이’를 욕처럼 사용하고, 차별금지법을 금지시키기 위해 시위를 하고, 여자 화장실에 몰래 침입하여 몰카를 찍은 남자의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메리 퀴어에 출연하는 세 커플의 바람은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과 완전히 맞부딪친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관상 이즈 싸이언스’라는 말은 안 믿지만 ‘유유상종 이즈 싸이언스’라는 말은 맹신한다. 세 커플의 주위에는 그들과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이성애자 친구들이 있다. 물론 떠나갈 사람은 이미 떠나간 후지만, 그럼에도 세 커플들 곁에는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가까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메리퀴어가 방영되기 직전, 프로그램에 대해 한 카페에 이런 글들이 올라왔다.
‘동성애 쓰나미!!! 이제 한국에서도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예능이 쏟아진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 아이들이 호기심에 동성애 해보게 되는 거 순식간입니다’
‘동성애 쓰나미’라는 너털웃음 나는 표현을 처음 봐서 검색해봤더니, 이미 동명의 책도 출간됐을 정도로 차별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널리 쓰이는 말이었다. 스스로 모르는 밈이 없을 정도로 '인터넷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앞으로 좀 더 노력해야겠다.
그들에게 쥘리 마로의 <파란색은 따뜻하다>에서 나오는 대사를 들려주고 싶다.
“이봐. 끔찍한 건 말이야, 석유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인종청소를 해대는 거지. 어떤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게 아니야.”